별을 본

2차/데레마스 2016. 3. 3. 22:30

별을 본

 

2015-11-21

닛타냐카에

닛타 미나미x아나스타샤x타카가키 카에데

 

 

 

 

사랑, 해요.

뿌옇게 흐려진 시야는 어두운 복도에 도통 적응하지를 않아 어디인지, 얼만큼 올라온 것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잔뜩 인상을 찌푸려보아도 계단의 한 단마저 제대로 보이질 않아 여간 곤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오직, 저기서 나를 비추는 저 빛만이 유일한 지표, 유일한 방향. 살짝 올린 고개의 각을 유지하며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의 잿녹빛 비상구 유도등을 응시했다. 

……ㅡ해ㅡ…

깊게 들이쉬어도 들어오는 공기는 짤막하고 오히려 몸에서 빠져나가는 공기가 많아지니, 점점 숨이 차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하지도, 서늘하지도 않은 정적으로 가득 찬 계단 복도에는 오직 나만의 숨소리가, 나만의 두근거림이 퍼졌다. 저 등 아래로 간다면 분명 탁 트인 하늘이 나를 기다릴거라는 생각이 들어 차오르는 숨도, 터질 듯한 두근거림도 전부 끌어안은 채 아무 온도조차 느껴지지 않는 벽을 짚어가며 한 층계씩 오르고 있었다. 

…ㅡ랑ㅡ…

이따금 유도등의 불이 나갔다가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 때마다 그 자리에 서서 잿녹빛의 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불이 없어도 층계를 오를 수 있었다. 한 번은 불이 꺼진 암전 속에서 층계를 올라봤다. 벽을 짚고 올라가는 손은 까끌한 벽의 감촉이 지나가 내가 한 층계씩 이동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고, 그 감촉에 집중을 하여 발을 떼니 왼손가락에 묶인 은의 무게가 꽤나 뜨겁게 다가왔다. 그 순간만큼은, 아니. 굳이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던 그 무게가. 그래서, 손의 감각을 잊고자 불이 켜질때만 걷기로 작정했다.

……ㅡ해요.

마지막 층계를 오르고, 드디어 유도등을 코 앞에 둘 수 있게 됐다. 목표로 하고 쭈욱 바라보던 그것이 이렇게나 가까이 있다니, 벅찬 고동소리가 목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깊게 들이 쉰 숨에는 옥상을 향하는 철문 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시린 공기가 섞여있어, 그 너머의 무언가를 향한 마음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무 온도도 느껴지지 않던 복도에서 빛나던 착각같이 따스한 빛의 등을 향해 무언의 애정을 담아 응시하고, 밖의 온도가 꽤나 차가울 것을 암시하는 것인지 싸늘하게 식은 철문의 둥근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ㅡ대답, 해주세요.

손잡이는 꽤나 단단하게 굳어서 강하게 힘을 주어 돌리고 밀었더니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고, 그와 동시에 복도라는 공간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먹을 들이부은 듯한 시야.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조차 가늠되지 않는 새카만 공간이 나를 삼켜버렸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문의 너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탁 트인 것인지, 내가 들어와 가득 찬 것인지 거리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묵언의 압도적인 공간에 두근거림은 이미 죽어버렸는지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고 스스로가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인지도 알 수 없게 숨소리도 삼켜져버렸다. 당혹스러움에 숨을 들이쉬어도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컥컥대며 밭은 기침을 내뱉으니 그 짧은 소리만 잠시 들리고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천천히 몸을 숙여 바닥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해 손을 뻗어내렸다. 무릎을 바닥에 대고 손으로 그 주변을 조금씩 더듬거려보았고, 이내 따끔한 감촉이 나 손을 황급히 올려보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어 뜨고 있으니만 못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Я люблю тебя. 미나미."
"…아냐쨩?"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토독, 톡 하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나 둘, 소리가 들려오고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숨길 수 없는 두근거림이 스스로의 귀를 치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그 소리를 숨길 수 없어 놀랐고, 천천히 뜬 시야에는 들고 있는 나의 손이 들어왔다. 무언가에 찔린 것이 분명한지 손 끝에 맺힌 작은 핏방울은 이내 주륵 하며 손가락을 타고 내려와 반지에 선을 그렸다. 

깜빡- 하고 눈을 가볍게 감았다 뜨니, 손 너머로 하얀 발끝이 보였다. 드디어 무언가 보이고 들린다는 안도감에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옷을 툭툭 털고 정면을 보자 바로 아냐의 빛이 들지 않는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고, 시야가 놀랍도록 넓어졌다. 


평범한 어느 건물의 옥상, 평범한 콘크리트 바닥. 몇 걸음 더 걸으면 도달하는 건물의 끝에는 허리쯤 오는 녹슬은 난간이 시야를 반분하고 있었고, 그 너머로는 새카만 밤 하늘이 펴져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달은 커녕 별조차 뜨지 않은 그 밤 하늘은, 깨진 듯이 날카롭고 투명한 유리와도 같은 얼음조각들을 옥상에 떨어트리고 있었고, 그 얼음조각이 내리는 걸 쭉 따라보니 콘크리트 바닥에는 내가 서 있을 공간을 조금 제한 채 나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얼음조각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리고 아냐는, 그 얼음조각들 위에 서 있었다. 눈을 떠 처음 본 그 하얀 발로, 날카로운 유리들을 밟고 서 있었다. 손 뻗으면 닿을 위치의 아냐는 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걸어온 것인지 걸음을 옮긴 자리의 얼음조각들이 제각기 검게, 검붉게, 그리고 이 앞은 붉게 칠해져있었다. 

"아냐쨩, 저기… 나ㅡ"
"ㅡ갈까요, 라이카."

방금 들어온 그 문은 손쉽게 아무 소리도 없이 열렸고, 마치 나는 없는 사람인냥 지나간 그 사람은 새카만 밤하늘과 같은 까만 바람을 쥐고 있었다.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그 사람은 순식간에 아냐의 옆까지 갔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냐는 내게서 등을 돌렸다. 잿녹빛의 그 사람은 고개를 살짝 돌려 내게 조소를 보이고는 쥐고 있던 바람을 올려 아냐의 하얀 머리카락부터 덮어씌워 가려내려갔다.

"카에데씨, 잠깐ㅡ"

카에데씨와 아냐는 난간을 향해, 건물 밖을 향해 걸어나갔고, 나는 까만 바람에 점점 가려져가는 하얀 아이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가려져가는 아이를 보다, 잔뜩 찢어지고 찔리고 흐른 피가 마르고 다시 나고를 반복해 검붉게 지저분해진 하얀 발마저 시야에서 사라진 시점에서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아냐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카에데씨는 이쪽을 향해 몸을 돌리고는 한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이고 생긋 웃더니 쥐고 있던 남은 바람을 흩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은 완벽하게 시야에서 사라져버렸고, 하늘에서 떨어지던 얼음조각들은 어느새 그치고 녹아 옥상을 적셔갔다. 그 모습을 멍하게 보다가 둘이 사라진 그곳을 향해 일어서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한 발자국씩 옮기는 발은 언제부턴가 하얗게, 지켜주던 신발조차 사라진 채로 헐벗어져 있었고 찰박거리며 물 웅덩이를 밟아갈 때마다 「사랑해요.」 「저를 봐주세요.」 「제발…」 「당신은?」 따위의 말들이 회색빛으로 떠올랐다. 아냐가 지나온 자리의 얼음들은 녹아 지저분하게 붉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으며, 그곳을 딛자마자 크게 놀라 주춤했다. 한참 덜 녹은 유리조각은 내 생각보다 더 날카로웠으며, 아주 조금 박힌 정도로 깊게 따끔거림이 느껴졌다. 

「대체 왜…」
「한 번이라도…」

아픔에 기어이 눈물이 새어나왔다. 한 두방울 타고 내려와 턱을 향했고, 톡- 하고 떨어지더니 이내 다른 얼음조각이 되어버렸다. 멈춰 선 발 끝에는 지난 연인의 나와 같은 반지가 떨어져있었고, 카에데씨가 흘린 은빛 검은 바람은 더욱 시리게 나를 치고 지나갔다. 더는 움직일 수 없어 고개를 들어 새카만 하늘을 바라보았고, 기어이- 닿을 수 없는 곳에 하얀 별이 박혀있었다.



"……하아."

눈을 떠보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러보며 몸을 일으켰고, 깊게 숨을 내쉬고 고개를 기울여 흘깃, 옆의 창가를 보았지만 역시나 밤 하늘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안돼요, 아냐쨩. 기다려.」
「…Да.」

아이의 코끝을 톡톡 치며 생긋 웃는 카에데씨와, 그 사람에게 다가가다 저지당해 시무룩해하는 아이의 표정이 떠올라, 다시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미간을 구겼다. 이젠 아무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 아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를 바꿔버린 나 자신이 야속했으며, 이제와서 다시 바라는 스스로가 경멸스러워졌다.

'2차 > 데레마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6.03.03
  (0) 2016.03.03
무엇  (0) 2016.03.03
  (0) 2016.03.03
7시 30분  (0) 2016.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