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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데레마스
2016. 3. 3.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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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3
카에나나
타카가키 카에데x아베 나나
"그래도 다행이네요… 우산, 사 두길 잘했어요."
이맘때쯤 귀갓길은 붉으면서도 노란 따스한 노을이 거리를 적셨고, 그 거리를 타박타박 걸어 역까지 가는게 하루를 마무리 짓는 소소한 기쁨이라면 기쁨일 그런 시간이였을텐데도, 오늘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ㅡ 우중충한 잿빛의 귀갓길이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강수 확률이 있다는건 오늘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일이라, 우산은 쉬는 시간에 편의점에 가서 하나 마련해 두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레슨받는 그 몇 시간동안 하늘은 캄캄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네요.
프로덕션 현관에 서 하늘을 바라봤답니다.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고, 비가 내린지도 꽤 된 것 같아요. 이런 날이면 이따금 무릎이 시큰거려서 곤란하… 지만, 나나는 17세니까 그런건 중요하지 않답니다! 집에 두고 온 분홍 바탕에 하얀 토끼무늬가 그려진 우산을 떠올렸어요. 손에 든 편의점표 우산은 접이식. 아무리 임시여도 여고생이 들고 다닐 우산이니까 조금은 디자인에 신경써볼까 했지만, 그나마 괜찮은 디자인이였다는게 이 짙은 녹빛에 검정 격자무늬.
"하아아… 뭔가 아버지의 우산같잖아요..?"
여고생의 초이스라기에는 굉장히 누추해보이는 우산을 풀어 두어 번 털고 현관 밖을 향해 펼쳤습니다. 손잡이를 잡고 휙휙 몇 바퀴 돌려봤지만, 그런다고 디자인이 바뀔 일은 없겠지요.
"우사밍 파워로 체ㅡ인지! … 가 될 리가 없나요?"
김 빠지는 웃음이 새어나왔답니다. 우산대를 어깨에 턱 걸치고 프로덕션을 나섰어요. 비오는 거리는 생각보다 시끄럽답니다. 프로덕션 앞의 도로에 차가 다니는 소리도 빗소리와 섞여 더욱 크게 들려요. 물 웅덩이에서 차지게 물이 튀는 소리, 사람들이 저마다 웅성거리며 걸어가는 소리, 찰박거리며 달리는 소리ㅡ
"어라ㅡ 언니?"
ㅡ카에데씨의 목소리.
"… 에?"
"여기 있었네요, 우ㅡ사밍! 언니."
"에, 네에… 돌아가는 길이니까요."
그보다 언니가 아니라니까요!? 나나, 17세! 카에데씨는 저보다 연상이시라구요! 라고, 따박따박 끊어 말하며 카에데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나나의 우산 높이에 맞추려 한 건지, 카에데씨는 엉거주춤 구부정한 자세로 무릎에 손을 올려 지지하고 옆에 서서는 나나가 가던 길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양 손에 가방은 커녕 우산조차 없기에 오늘 날씨를 예상하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는걸 눈치챘답니다.
"톱스타시잖아요? 이렇게 비 맞고 다녀서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그러나요?"
카에데씨를 마주하고 서 한 손에 우산을 들려주었답니다. 카에데씨는 엉거주춤한 그 자세에서 한 손만 들어 우산을 받은 채 나나의 눈을 빤히 바라봤어요.
"언니, 손수건도 들고 다니시나봐요? 역시 현역 여고생은 다르네요."
젖은 옷마저 어떻게 해줄 수는 없어서 주머니에서 토끼모양 자수가 작게 박힌 나나의 손수건을 꺼내 젖은 머리가 달라붙은 얼굴이라도 닦아주었어요. 카에데씨의 시선은 나나의 손수건을 따라움직이다가 나나의 움직임이 멈추자 다시 나나를 응시했답니다. 그리고는 빙긋, 눈을 감아가며 웃어보였어요.
"그나저나… 이제 어쩔까요?"
"흐응… 어쩔까요?"
근처 편의점에 가 우산을 하나 더 살까, 라는 생각에 주변을 휙휙 둘러봤지만 당장 근처 거리에는 편의점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이 불편한 자세를 유지하게 하며 같은 우산을 쓰고 가게는 할 수 없고. 나나의 고민을 함께 해 나눠주려는건지, 생각을 안 하고 있는건지 카에데씨는 그저 능청스럽게 빙글빙글 웃더니 갑자기 확 일어나버렸어요.
"에잇ㅡ"
"꺄!? 자, 잠깐만요!? 그렇게 우산을 올리면 나나가… !"
젖어버린다구요ㅡ라고 말을 뱉어내기가 무섭게 굵은 빗줄기가 나나의 치맛자락을 적셔버렸어요. 황급히 치마를 털어내지만, 빗방울은 이미 스며들고, 번지고, 계속 내려앉았어요. 한숨을 푹 쉬며 그렇게 예고도 없이 일어날 정도로 허리가 많이 아팠던 모양이네요. 라고 생각하던 찰나ㅡ
"… 후훗."
카에데씨는 노렸다는 듯이 남은 쪽 손을 입 앞에 갖다 대고는 빗소리에 은근슬쩍 웃음을 섞여보냈어요. 그런 카에데씨를 올려다보니, 이내 나나를 내려다보고는 다시 몸을 숙여 우산을 나나의 손에 쥐어주었답니다.
"한 우산을 저희 두 사람이 쓰고도 비를 안 맞는 방법이 있어요."
"굳이 한 우산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나요… ?"
"이렇게 하면ㅡ"
"엣?!"
흐읍, 하는 소리와 함께 카에데씨는 우산을 든 나나를 안아올렸어요. 여고생의 로망, 공주님 안기를 이런데서나 당하게 될 줄은 나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아요. 아니, 이런게 중요한게 아닌가요?
"… 언니, 생각보다 많이 무겁네요."
"그, 그그그그런 말 막 하지 말아주세요! 여고생의 여린 마음에게 예의가 없으시네요!"
카에데씨는 이어 빙글거리던 웃음기를 싹 걷어내고 무언가를 찾는 것인지 주변을 돌아봤어요. 우산이 작기도 하지만, 안아올려졌을 때 버둥거린 탓에 나나의 신발과 다리는 완벽하게 비에 젖어버렸어요. 카에데씨는 무언가 확인하고는 시선을 돌려 나나의 젖은 치마와 다리를 훑어보고는 나나와 눈을 맞췄답니다.
"저 때문에 많이 젖어서 어떻게 하지요, 언니?"
"…… 누누이 말하지만, 언니가 아니라 나나니까요. 나나가 더 연하니까요."
이젠 고쳐주기도 지칠 정도예요. 라는 말을 덧붙이며 한숨을 내쉬고 카에데씨를 봤어요. 어두운 거리, 우산 아래인데도 카에데씨의 그 눈은 빗방울의 빛을 모아 담은 것인지 반짝이며 각각 푸르고도 깊은, 어딘지 모를 따스한 온도를 담아 예쁘게 빛나며 나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말문이 점점 닫혀버려서 카에데씨와 나나는 몇 분 정도 그 상태로 서 있었어요.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도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에,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 속에 빗소리와 함께 섞여 시끄럽게 울려댔어요. 나나는 눈을 질끈 감고 빗소리라도 걸러들으려 고개를 저었지만 난잡한 건 여전했어요.
"미안해요. 그러니까, 옷이라도 말리고 가요."
"…… 네?"
"여기, 택시ㅡ"
번잡한 소리 속에서 카에데씨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나나의 귓가를 파고 들었답니다. 당황스레 받은 권유에 눈을 떠 보니 카에데씨의 눈동자에 비친 나나는, 더욱 깊은 곳에 맺혀있는 것 같았어요. 그 눈을 가만히 보다 시선 옮겨버리니 눈에 들어 온 카에데씨 너머의 우산은 더 이상 칙칙한 중년의 디자인이 아닌, 갓 왕자님을 만난 공주님의 마음과도 같은 연하지만 확실한 분홍빛으로 보였답니다. 그리고 얼핏, 하얀 토끼무늬도 박혀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카에데씨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이고는 타박타박, 도로변을 향해 몇 걸음 걸어나갔어요. 그러자 신호는 타이밍 좋게도 초록불로 바뀌더니 저희의 앞에 차량이 한 대 멈춰섰어요. 카에데씨는 나나를 살며시 내려주며 손에서 우산을 받아들고 몸을 숙여 나나를 씌워주었답니다.
"자, 타요."
"… 예? 아, 네에… "
카에데씨는 뒷 문을 열고는 나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어요. 그 손짓에 묻은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택시의 뒷 좌석으로 몸을 옮겼답니다. 이윽고 카에데씨도 우산을 접으며 나나의 옆에 타고는 문을 닫았어요. 그리고 아마도 카에데씨의 주소로 추정되는 곳을 나긋나긋 기사님께 말하고는 시트에 몸을 파묻듯이 기댔답니다.
나나는 분명 퇴근을 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카에데씨가 나나의 우산을 함께 쓰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나나는 옷이 젖어버렸고, 왠지 카에데씨가 택시를 잡아서, 어째서인지 카에데씨의 집에 옷을 말리러 가게 된 상황이 되었네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어요.
"잠깐만요, 카에데씨."
"네?"
나나는 카에데씨가 앉은 근처의 시트를 톡톡 두드리고는 그 쪽을 향해 몸을 돌렸어요. 그리고 아직 채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열심히 헤집어가며 눈을 굴렸답니다.
"카에데씨, 오늘 우산 안 가져왔지요?"
"네, 안 가져왔어요."
"그런데 우산은 안 사고, 택시 탈 돈은 있었나요?"
"으음ㅡ"
우산 없이 적당히 택시를 기다렸다가 온 택시를 잡고 귀가할 생각이였답니다. 라는 카에데씨를 보며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 괜히 찾아온 위화감을 꾹꾹 눌러담으며 싱긋 웃어보였어요. 카에데씨는 그런 나나를 가만히 보다가 나나의 젖은 치맛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겼답니다. 나나는 카에데씨의 그 하얀 손 끝을 의아하게 쳐다봤어요. 그리고 다시 본 카에데씨의 눈은 빙긋, 짓궂은 호를 그리며 웃고 있었어요.
"게다가, 우산을 사 버리면 이렇게 적실 수도 없잖아요?"
"… 네?"
무슨 뜻인지 의아함을 담은 되물음에 카에데씨는 시트에 묻은 몸을 일으켜 한 손, 한 손 짚으며 나나의 곁으로 숙여왔어요. 그 움직임에 나나는 왠지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어요.
함께 저희 집으로 가요, 나나쨩.
그리고 녹아내릴 듯한 바람같은 목소리로 나나의 귓가에 속삭였답니다. 복잡한 생각이 뚝 끊겨버리더니 머릿 속은 온통 조용한 가운데 카에데씨의 목소리만 온전히 떠올랐어요. 굳은 채 바라 본 정면의 차 유리 너머로는 짜맞춘 듯이 온통 초록불이 켜져있었답니다.
빗소리도, 웅성이는 소리도, 번잡한 생각도 전부 멈춘 채 택시는 유유히 번져나가는 초록 불빛의 거리를 달려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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