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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데레마스
2016. 5. 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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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8
닛타냐
닛타 미나미x아나스타샤
돌아간다, 라는 무거운 기분은 얼마 가지않아 잊혀졌다. 시트에 붙은 액정 속 항공정보는 고도만 다를 뿐, 여전히 한 장소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의 시야는 온통 새로운 곳으로 보여, 귀가보다는 새로운 어딘가로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왠지 어딘가 익숙한 이 공간이 자신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이륙하기 직전까지의 피곤함은 꼭 쥐고 있던 휴대폰을 놓치기에 딱 좋았다. 아직 땅을 뜨지 않은 기체 안에서 이제 곧 돌아갈 거라는 연락을 남긴 채 뻐근해진 발목을 애써 두어 번 눌러보고는 만족스럽지 않은 듯이 손을 털고 시트에 몸을 묻어버렸다. 새카만 아스팔트는 이른 아침의 밝은 햇빛조차 삼키며 저 멀리까지 쭉 펼쳐져있었다. 이걸로 휴가도 끝이네, 라는 마음이 닛타 미나미의 마음을 더욱 그곳에 묶이게 했다. 그녀는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애써 올리며 창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자신을 지나는 활주로를 응시했다. 며칠만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바람은 어쩔 수 없다, 라는 현실로 덮어버린 채 돌아가 연인에게 보여줄 영상을 찍을 준비를 했다.
"아, 이제 뜨는 건가 보네."
활주로를 달리는 기체의 속도가 올라가자 시야에 들어오는 아스팔트들은 더욱 빠르게 미나미의 시야각에서 벗어나고 들어오고를 갈아 반복했다. 시트에 파묻은 몸에 하중이 가해지는 것을 느끼자, 곧 이륙할 것이라는 생각에 동영상 버튼을 눌러 그 시야각을 담아냈다. 이윽고 비행기가 땅을 박차 떠올랐고, 그곳에 아쉬움과 후회가 행여 남았을까, 미나미는 고개를 저어 마음을 단단히 바로 잡아챙겼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휴가를 신나게 즐기지 못한 스스로에게 더 무리를 해서라도 알차게 보냈어야 했다는 모진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는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금세 접어버리고 방금 찍은 이륙 동영상을 보았다.
Большое хорошо…!
신기하다는 듯이 휴대폰을 받아들어 영상을 가만히 바라볼 아냐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잠시 웃음이 걸렸다. 그동안 연인이 생각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자리에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의 생각이 더 자주 났지만 사실상 각자의 스케줄로 인해 함께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 의미없는 아쉬움은 접어두고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려 했다. 하지만 어째 휴가 내내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시간을 낭비했다, 라는 생각이 여행 내내. 그리고 지금 이곳을 뜨는 순간까지도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효율성 없는 휴일을 보낸 것일까, 라고 생각하다가도 쉬는 것에 효율성을 따지는 것이 옳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금세 그 전 생각을 잡아먹고 그것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머릿 속을 어지럽혔다. 그저 연인의 따스한 포옹이 그리워졌을 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휴일을 보내러 나올 필요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쓴 입맛을 다셨다.
"이제 곧 같은 곳을 밟고 서로를 마주할 수 있겠네. …그렇지, 아냐쨩?"
길지도 않았던 휴가 기간동안 얼마나 많이 연인을 생각한 것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좋은 풍경을 볼 때면 그 근처에 앉아있던 연인들이 마치 자신들인 것처럼 보였고, 맛있는 식사 앞에서는 그걸 떠 상대의 입에 넣어주는 생각까지도 했다. 무거운 발 걸음을 옮겨 돌아온 숙소에서 신발을 벗기가 급하게 직선으로 침실로 연인을 밀고 가 포근한 하얀 이불 위에 풀썩 쓰러지는 상상도 해보았다. 같은 숙소에서 같은 세면용품으로 씻은 둘은 분명 같은 향이 날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도 했다. 그저 상상에 그쳤을 뿐이라는게 휴가 중인 미나미의 마음을 붕 띄워놓고 앉을 곳 없게 했을 뿐이다. 잘 지내고 있을까, 무슨 일은 없었을까. 아냐는 스케줄이 비는 동안은 틈틈이 연락을 보내주었지만, 직접 함께 하지 못하니 그런 연락만으로는 아냐의 표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아, 괜찮다는 말에 정말 괜찮은게 맞을까 라는 불안함도 가졌다. 솔직하게, 미나미의 휴가는 완전히 망가져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휴가를 보냈음에도 더욱 피곤해진 머릿 속을 애써 저어버리고 눈을 감았다. 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서서히 그 안을 정리하고 가득채워갈 쯤 자신의 앞으로 나온 기내식을 받아들어 무심하게 입에 밀어넣었다. 지금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저 돌아가고 싶다 라는 생각 속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지칠 스스로의 모습도 떠올렸다. 대체 어느 박자에 맞춰 기분을 정해야 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 아. 하늘… 이."
찌푸린 시야 사이로 햇빛이 밝게 들어왔다. 앞쪽 창에 하늘이 비치는 것을 보고, 바로 옆 내려둔 창의 가림막을 올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온통 새파란 하늘. 저 너머 어디까지고 펼쳐있는 하얀 구름띠는 멀면 멀 수록 하얗기도, 어찌보면 회색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한참 아래로 보이는 도시들은 점점 멀어져 더욱 작게 보이고, 부드러운 천을 가볍게 쥐어놓은 것인냥 둥글게 솟은 산과 산들이 오밀조밀 모여있었다. 미나미는 대충 우겨넣은 밥을 천천히 씹어넘기며 휴대폰을 들어 그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시선 아래로는 얇게 불투명한 구름이 빠르지만 눈에 잡힐 정도로 흘러가고, 이어 멀리 있던 눈 덮인 산이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의 새로운 모습들에 미나미는 사진을 찍던 휴대폰도 내려둔채 먼 푸른 하늘을 계속 응시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 푸른 빛은, 새로움이라는 신비를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낯이 익었다. 드문드문 둥글게 뭉친 하얀 구름덩어리는, 연인의 푸른 눈동자에 닿는 하얀 태양빛과도 닮아있었다.
"이제 곧, 만날 수 있어. 나의 휴식처… "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더욱 강하게 미나미의 마음을 지배해갔다. 기존에 있던 곳을 떠나고 싶다는 일탈감에 나온 타지는 오히려 자신을 지치게 했고, 돌아가는 순간의 땅은 휴가에 대한 아쉬움을 점점 불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순간 마주한 하늘이 자신을 너무나 가볍게 안아들어주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연인을 안고, 또 연인에게 안겨있을 스스로를 떠올렸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밟고 이 푸른 하늘을 그 두 눈에 담고 자신을 봐줄 아냐가 떠올랐다.
"앞으로 35분 정도려나."
미나미는 그제서야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고 가볍게 시트에 몸을 기댔다. 도착 예정까지 앞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시트 속 화면에 비친 도착지를 톡톡 두드렸다. 아직 아무 통신도 되지 않는 휴대폰의 화면을 켜 잠금 화면에 걸린 두 사람이 손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았다. 분명 잘 지내고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리면 바로 전화부터 하고 싶어졌다. 그 목소리를 듣고, 내일부터 시작될 스케줄까지 조금 더 쉬고 싶어졌다. 내일이 찾아올 그 단 몇 시간이 요 며칠의 휴가보다 더 포근하게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차올랐다. 꺼진 휴대폰 화면에 비친 스스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언제부터인지 웃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당연스러웠다. 쉴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걸 미나미는 재차 깨달았다.
돌아가야 할 곳. 쉴 수 있는 곳.
전화하면 가장 먼저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아주 짧게 고민해보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뻔한 말이라도 반기며 들어줄 연인의 모습이 떠올라 또 가볍게 웃음이 나왔다. 손에 걸린 반지가 오늘따라 더 눈에 띄었다.
다녀왔어, 보고싶었어. 아냐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