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뱀파이어, 인간 AU - 1
2015-12-09
카에닛타냐
타카가키 카에데x닛타 미나미x아나스타샤
"미-나미, 미나미!"
"아냐, 사람들이 쳐다보잖니."
"음ㅡ 그래도 좋습니다."
"… 정말… "
짧게 웃어보이고 다시 앞을 봤다. 황금빛 눈을 본 어제가 꿈만 같아, 오히려 없었던 일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살랑거리며 내 주위를 뱅뱅 도는 아냐를 보니, 마냥 꿈이 아니라는게 더욱 확실히 느껴졌다. 앞으로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눈 앞이 캄캄해지는걸 느꼈다. 확실한 강함에 의존하던 내가 감정에 휘둘려 도박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혹여라도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냐와의 다툼이 더욱 격렬해지면 이 아이는 얼마나 다칠까? 나는 이제 더는 필요없는 인간이 돼서 나를 없애려고 들면 어떻게 하지? 같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과연 내가 아냐를 선택한 건 옳은 일이였을까?
정신없어, 라며 붙잡은 아냐의 손. 따스함은 긴장된 마음을 살짝 녹여주는 듯 했으나, 프로덕션에 가까워질 수록 불안함이 더욱 강하게 치고 올라왔다.
"아ㅡ 미나미, 도착입니다. 아냐, 이만 가보겠습니다."
"응, 고마워. 아냐쨩."
"이따 봐요!"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붕붕 흔드는 아냐를 보고 가볍게 손을 마주 흔들어줬다. 기분 좋아보이는 아이의 앞에서 나의 불안을 보일 수는 없어 다른 손으로는 붙잡고 있는 가방끈을 더욱 세게 쥐었다.
「이번 제 촬영 대기실로 좀 와주시겠어요?」
촬영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카에데씨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잠시 눈을 감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했으나 너무 단칼에 정리해버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두려워, 우선은 카에데씨와 아냐, 그리고 나 스스로를 위해 지금 상황을 조금만 더 연장시키기로 마음먹고 발걸음을 옮겼다.
"밝은 정오의 향이 여기까지 나네, 미나미."
"아, 카나데씨."
"오늘은 그 아이, 없나보네."
"그 아이라니… ?"
대기실로 향하는 길. 인기척을 느낄새도 없이 옆에서 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노란 빛 밝은 눈과 마주쳤다. 짙은 군청이 새카만 검정 속에서도 빛을 받아 반짝이며 색을 드러내는 매혹적인 단발의 카나데씨. 시원하면서도 달큰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전해져 놀랐지만 이내 생긋 웃어보였다. 그 아이, 라는건 역시 아냐의 이야기겠지.
"대기실로 가는 길이라던지?"
"응, 카에데씨가 불러서 가는 길. 카나데씨는?"
"같은 대기실로 가는길, 이라고 하면 되려나."
카나데씨는 카에데씨를 언급하자 눈을 가늘게 뜨다 다시 싱긋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크로네의 멤버들은 카에데씨를 피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들 앞에서는 딱히 그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미나미, 눈 말이야."
"에, 내 눈… ?"
"응. 알고 있어? 네 왼쪽 눈. 금빛이 조금 일렁이는 것 같은데."
"… 에?"
"다행이네. 파트너, 제대로 찾은 모양이야."
내 손목에 걸린 시계를 톡톡 건드리고는 그럼, 먼저 들어갈테니까 천천히 와. 라며 카나데씨는 휙 하고 사라졌다. 금빛이 일렁인다니, 또 늘상 있는 비유인걸까 싶어 잠깐 고민해봤다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런 생각보다는 당장에 카에데씨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가 더 큰 고민이였다. 어떻게 해야하나를 고민하다가 기어이 대기실에 도착해버려서, 일단 부딪치고 보자 라는 마음에 문고리를 열고 들어갔다.
"왔나요, 미나미쨩."
"네."
카에데씨는 보란듯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그 옆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저 너머에서는 카나데씨와 후미카씨가 앉아, 내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시선을 거뒀다. 카에데씨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불편한 모양이라, 나도 우선은 더 신경쓰지 않기로 생각하고 카에데씨의 옆에 가 앉았다. 오늘도 카에데씨는 여전히 처져있었다.
"지치네요. 이거, 잘 낫지 않는답니다."
"… 그건… "
"네, 어딘가에 사는 하얀 강아지에게 물린 상처랍니다."
카에데씨는 코웃음을 치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공급을 요구하는 손짓. 나는 익숙하게 시계를 풀었고, 손목의 단추를 풀어 카에데씨의 그 손 위에 살며시 손목을 올렸다.
"……… 흐응?"
카에데씨는 받은 손목을 입가에 가져가다가 멈칫하고는 빤히 손목을 바라봤다. 이어 내 눈을 잠시 보더니 다른 손을 가져와 나의 블라우스 목 부분의 단추를 네 개쯤 풀러내고 어깨를 드러내 빤히 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없네요, 손목에는. 이상하지요? 어깨에는 남아있는데 말이에요."
"그, 그건.."
"혹시 어제 아냐쨩을 만났나요?"
실수였다. 아냐가 핥은 후 손목의 상처가 아물어버렸다는걸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나는 분명 반대쪽 손목을 내밀었을 것이다. 아냐쨩을 만났냐는 말에 그냥 인사만 하고 왔다고 대답했을 평소와는 다르게 나는 눈에 띄게 당황함을 숨길 수 없었고, 카에데씨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는걸 느껴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해버렸다.
"오늘은 제가 데려다드리고 싶었어요, 이만 가볼게요. 린쨩!"
"오우, 나도 이만 가본다구~ 시부린!"
"응, 둘 다 고마워."
"До свидания."
황급히 돌린 시선은 마침 열려가는 대기실의 문으로 향했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카에데씨도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 듯 노려보는 따가움이 사라졌다. 대기실 문으로 아냐가 먼저 모습을 보였고, 그 뒤를 이어 린이 들어왔다. 아냐는 들어오자마자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 자리에 석상처럼 딱 굳어버렸다.
"흐응, 강아지가 둘."
"자, 우린 하던걸 마저 하지요. 미나미쨩"
"아, 읏!?"
아냐가 각인된게 바로 어제의 일이고 나를 지켜준다 한게 바로 어제의 일인데도 나는 이렇게 이 자리에서 늘 있던 일과 마찬가지로 카에데씨에게 손목을 내밀고 있었고, 아냐도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는 듯이 멈춰서서 이쪽을 번갈아 봤다. 카에데씨는 그런 아냐와 린을 보고는 보란듯이 나의 손목에 입을 가져다댔고, 방심한 사이에 지체없이 꽂혀오는 시린 이물감에 눈을 질끈 감고 외마디 신음을 냈다.
"ㅡ!!"
"잠깐, 아냐!"
무언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린의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고, 눈을 뜬 시야에는 놀랍도록 빠르게, 직선으로 은빛 늑대가 카에데씨를 덮쳐왔다. 카에데씨는 물고 있던 나의 손목을 채 놓지 못해 그대로 아냐의 힘에 밀려 바닥으로 함께 떨어졌다.
그에 의해 나는 카에데씨의 이가 박혔던 만큼 손목이 찢어져버려 타는 듯한 고통에 자리에 주저앉아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나며, 상처에서는 피가 붙잡은 손을 적시고도 바닥에 한 두방울씩 새어나와 떨어졌다. 이것이 전부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아련한 절규가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어찌보면 저들이 나는 상처에 비해서는 아주 가벼운 상처일지도 모르는데도 나는 이정도에 정신을 잡기도 힘들 정도로 아픔을 느끼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 방 안은 전부 무서운 존재들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싸고 돌았다.
"ㅡ! … !!!"
"개, 이 개… ! 윽… "
"ㅡ!"
조금 떨어진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아냐는 카에데씨를 압도하며 그녀를 위에서 짓누른채 어떻게든 물어뜯으려 입을 벌리고 고개를 들이받고를 반복했고, 카에데씨는 아냐가 밟지 못해 남은 한쪽 팔을 들어 아냐의 어깨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 손이 아냐의 어깨를 강하게 파고드는게 분명한지, 아냐의 하얀 털은 카에데씨가 잡은 부분을 기점으로 또 다시 짙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린과 미오는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정리해야할지를 고르는 듯이 우즈키를 감싸고 그 쪽을 보고 있었고, 카나데씨와 후미카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개입할 틈을 보고 있었다. 다만 이 모두는 이렇게 일어난 상황이 카에데씨와 아냐라서 섣부르게 말리려들지 않는 것 같았다.
"… ! 커흑… ! 컥… "
"!… "
손목을 꼭 붙잡고 아득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니 카에데씨가 쉰 소리를 냈다. 아냐의 다리 사이로 보이는 광경은, 카에데씨가 붙잡은 어깨를 놓친 채 목이 물린 상태. 아냐에게 압도당한 그 자체였다.
"아냐쨩, 그만해!!!!"
불과 몇 분 전만해도 나의 손목을 잡고 있던 사람이 저기에 누워 큰 짐승에게 당한다, 라는 생각이 들어버렸고 나는 판단할 새도 없이 당황스러움에 소리를 질렀다.
"ㅡ……… ?"
아냐의 이름을 외치자마자 아냐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카에데씨를 놓고 이쪽을 바라봤고, 나는 그 황금빛을 띄는 한 쪽 눈과 마주치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느꼈다. 아냐는 당황스러움과 이해할 수 없음을 잔뜩 눈에 채우곤 나를 응시했고, 나를 지키려 했던 아냐의 마음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푹 하고 가슴이 쑤시는 걸 느껴 미간을 구겼다.
"… 커, 흐… …… 빈틈ㅡ"
"… !!!"
아냐가 카에데씨를 놓고 이쪽을 보는 그 잠시의 틈에 카에데씨는 자신의 목을 붙잡고 한 쪽 다리를 자신의 배 쪽으로 당겼다가 그대로 강하게 아냐의 복부를 걷어찼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사람의 발길질로 보일 그것은, 그 큰 아냐의 덩치를 가볍게 날렸고 아냐는 그대로 나를 지나가 린과 미오, 그리고 우즈키가 있는 그 옆의 벽에 직격하여 큰 충격음을 내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 아냐쨩… ?"
"아냐, 안돼. 여긴 프로덕션 안이야. 아냐!"
"자, 자자잠깐 아냐. 진정, 진정!"
"ㅡ!!…… "
나의 목소리가 전달되기는 했을까, 싶었다. 아냐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미오와 린은 황급히 아냐에게 이동해 일어나려는 아냐를 붙잡았다. 린은 가디건을 벗어 아냐의 눈을 가려주었고 일어나려는 그 상체를 붙잡았지만 역부족인지 들썩들썩거려 간신히 아냐를 누르고 있는듯 했다. 카에데씨를 노려보는 그 녹안의 한 쪽은 황금빛이 눈에 띄게 일렁거리며 차오르는게 보였다.
"… 아, 아나스타샤씨, 안돼요… 여기, 프로덕션 안… 누구보다 규율, 잘 지키시던 분이…… "
"흥분할 만 하지 않으려나. 자신의 파트너가, 수혈 없이는 살 수 없는 정통파 흡혈귀분과 함께 있는것도 모자라 공급 장면까지 목격했으니까."
린과 미오, 둘 만으로는 역부족이여보였는지 줄곧 보기만 하던 후미카씨가 빠르게 다가가 그들에게 합세했고, 카나데씨는 목을 붙잡고 컥컥거리며 바닥에 연신 피를 뱉어내는 카에데씨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그들을 도우러 갔다. 아냐는 그렇게 눈이 가려진 채, 사람이 아닌 넷의 힘으로 눌려졌는데도 들썩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았다.
"…… 나가지요, 미나미쨩."
"아, 하지만… 아냐쨩이."
"나가요."
카에데씨는 옷 앞섶이 젖어가는 와중에도 서서히 아물어가는지 목을 붙잡지 않은 채 내게 와 주저앉은 나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 상황이 전혀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은 나는, 그저 아냐가 쓰러져 이쪽을 향해 분노를 표현한다는 것만이 가슴 깊이 들어와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걸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답답하네요. 나가자면 나가는 거랍니다."
"… 읏… 잠깐…… !"
카에데씨는 아직 채 지혈되지 않은 나의 손목에 입을 갖다대고 흘러나오는 것들을 한 입 머금고는 아냐쪽을 차갑게 흘겨봤다. 카에데씨는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이 없는 내가 답답했는지, 입을 떼고 자신의 목을 한 번 쓸고는 나를 가볍게 들어 안고는 그들의 옆을 지났다.
"어라~ 여기에도 각인자가 하나."
"… 에… ?"
"…… 건드리지마… "
"흐응~ 뭐. 관심 없지만요."
카에데씨는 문을 나설쯤 그 옆에 서있던 우즈키를 보았고, 나도 마찬가지로 우즈키와 눈이 마주쳤다. 우즈키는 당황한 듯이 나와 카에데씨를 번갈아 보았고, 그제서야 나는 카나데씨가 한 말이 이해가 갔다. 우즈키의 한 쪽 눈은, 린과 같이 황금빛이 차오르고 있었다. 카에데씨는 그런 우즈키를 보고 코웃음을 쳤고, 린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이어 들리자 눈길도 안 주고 나를 데리고 복도를 향해 유유히 이동했다.
미나미, 미나미!!!!!!!
멀어지는 대기실, 열린 문 틈으로 더는 아냐가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또 다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카에데씨는 나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걸까.